메아리 없는 종소리

국군 포로들 은 왜 못 돌아 오는가

제목메아리 없는 종소리: 국군 포로들 은 왜 못 돌아 오는가
메아리 없는 종 소리: 국군 포로들은 왜 못 돌아 오는가미주 국군 포로 송환 위원회
저자정용봉
에디션일러스트
발행인Miju Kukkun P’oro Songhwan Wiwŏnhoe, 2015
ISBN0996330100, 9780996330107
길이22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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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참혹했던 그 날,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아” [LA중앙일보] 발행 2015/06/25 미주판 20면

정용봉 씨 국군포로 책 펴내
26일 “메아리…” 출판 기념회

21년 전인 1994년 10월 북한에서 한 군인이 탈북했다. 조창호 소위다. TV를 지켜보던 정용봉(88.사진)씨는 귀를 의심했다. 북한 계급이 아닌 한국군의 계급이었다. 

정씨는 “깜짝 놀랐다. 국군포로가 살아 있었다. 이어 아직도 북한에 많은 국군포로가 억류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며 “그동안 무엇을 했나 싶었다. 동료와 부하를 잊고 지낸 자신을 책망했다.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일을 할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용봉씨

정씨는 이날 이후 사재를 털어서 한국과 미국 정부에 수없이 탄원했다. 2004년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연방하원에서 열린 국군포로에 관한 청문회에도 참석했다. 2011년에는 UN에 탄원서를 내고 국제형사법정에 제소하기도 했다. 

정씨가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해 헌신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 또한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했고 51년 양구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시사관학교 8기로 들어가 8사단 16연대 2대대 4중대 중화기중대에 소위 임관을 받았다. 당시 166명이던 중대는 앞선 전투에서 130여명이 전사 실종 포로가 되었다. 중대장도 없어 임관하자마자 중대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전투에서 한국군 실종자들이 많았다. 대부분 포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는 제네바협정에 의해 포로들이 다 돌아온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온 뒤 생업에 바빠 전쟁을 잊고 살았다. 참혹했던 그날의 한국의 모습이 꿈에 나타나고는 했지만 잊고 싶었다. 비극이었다. 

하지만 국군포로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그의 생활도 바뀌었다. 51년 전투가 일어났던 날들을 떠올렸고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라도 더욱 열심히 뛰어다녔다. 

국군포로와 관련된 영어 한글로 된 자료는 있는대로 찾아보았다. 많지 않은 문서들 속에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세상에서 격리된 채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2005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포럼에는 400여 명이 참석했다. 모두들 믿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이어 2005년에는 외교분과위원장 명의로 인권결의서가 채택됐다. 이듬해 청문회가 열렸다. 그 사이 한국정부와 국회 정치인 언론에도 수없이 국군포로에 대해 관심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이제 90을 바라보는 정씨는 힘에 부친다고 한다.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펴냈다. 그동안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일해 온 자료들을 모았다. 1.5~2세를 위해 영어로도 틈틈이 번역하고 있다 

그는 “80명 넘던 탈북한 국군포로들이 이제 52명으로 줄었다. 나이가 들어 죽기도 한다. 정부가 나서고 민간인들이 도와야 한다”며 “분단의 비극 민족의 비극인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씨는 “모든 문제는 통일이 되어야 풀릴 것이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씨의 ‘메아리 없는 종소리 국군포로들은 왜 못 돌아오는가?’ 출판기념회는 26일 오후 6시 옥스포드 팔레스호텔에서 열린다. 

▶문의: (714)717-1121 

백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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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치 해소로 국군포로 해결 기대” [ LA중앙일보] 발행 2018/08/31 미주판 9면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토머스 정 회장

트럼프에게 “국군 포로송환” 관심 촉구 
문재인 대통령에 “책무 다해 달라” 서신

국가 수호에 나섰던 참전군인 기억해야
북한내 포로 200여 명…조속히 송환해야

“오랜 기다림 끝에 진행되는 한국 전쟁 종전 협정에 기대가 큽니다. 남북 대치가 해소되면 국군 포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한인사회 올드타이머로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Korean War P.O.W. Affairs in USA)를 이끌고 있는 토머스 정(한국명 정용봉.91) 회장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 및 미.북 회담에 대해서 “고무적”이라고 반응했다.

최근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정용봉 회장은 서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 23일 정 회장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정 회장이 지난 2004년 세운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북한정권을 제소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벌이며 꾸준히 활동해왔다.

정 회장은 “일부가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노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며 “오랜 기간 남북 대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국군 포로 동료들을 생각하면 어찌됐든 이런 상황을 청산한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올해들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평화 정착을 위한 희망이 무르익고 있다. 적대와 반목의 해소는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서신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국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민의 생명과 국토의 보전을 책임지는 책무를 가졌으니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에게도 국군포로 송환 관련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양국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의 경우 매우 원론적인 답변(작은 사진)만 해왔지만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봅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아직 답신이 없습니다.”

(정회장과의 인터뷰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북한 방문이 취소되기 전에 이뤄졌다.)

토머스 정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의 웨스트LA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한국도 관심이 부족한 국군 포로 송환위원회를 미국에 세운 이유는.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해서 귀환했다. 나도 한국전에 소위로 참전했지만 국군 포로의 존재를 몰랐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죽음같은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2004년 조창호 소위를 미국으로 초청했고 송환위원회를 세웠다.”

-한국정부에서 조 소위 덕분에 국군포로의 존재를 알았다. 역대 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나.

“국군포로의 존재를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관심이 쏟아졌으나 IMF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지만 대통령이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임에도 불법 억류된 포로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대신 장기수 간첩 62명의 석방문제에 기꺼이 합의했다.”

-노무현 정부는 어땠나.

“김정일-김대중의 6.15 정상회담을 보고 국군포로와 가족들이 큰 기대를 걸었다가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간 장관회담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언급했지만 결론적으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우리는 북한의 국군포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오늘날 한국이 북한보다 확실히 잘 사는 국가로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성장과 번영의 기초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 국민들은 국군포로를 잊어서는 안된다.”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 포로는 어떤가.

“억류 국군포로는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한을 품고 북한 땅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평생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 예전 통계는 7만 여명 탈북자들과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면 대략 200명 정도가 남아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조창호 소위 이후 몇명이나 한국으로 귀환했나.

“조 소위를 시작으로 80명이 자력으로 탈북했고 51명이 숨지고 현재 29명만이 생존해 있다.”

-현실적으로 세월이 너무 흘러서 송환이 어렵겠다. 송환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뭔가.

“북한이 한국 전쟁 후 여초 사회가 됐다고 한다. 송환 안한 국군 병사들은 모두 결혼을 시켰다. 1956년엔 공민권까지 주며 정착을 유도했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역사에서 이렇게 전쟁이 끝났는데도 포로를 송환하지 않은 일이 많았나.

“소련이 2차세계대전 후 독일군 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건설현장에 강제 노역을 시킨 적이 있다. 결국 2/3이 죽고 1/3이 나중에 살아남아 귀환해 그 사실이 알려졌다.”

-이번 판문점 회담 싱가포르 회담 등 한반도의 정세가 평화무드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의 문재인 정부의 노력으로 진행되고 있는 회담은 고무적이다. 남북 대치 해소 평창 올림픽을 높이 평가한다. 이렇게 적대적인 대치와 반목 상황이 해소되면 국군 포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본다.”

-일부에서는 또 김씨 정권에 속는다고 한다. 

“김정은이 좀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30분 차이가 났던 평양시간을 서울시간으로 맞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물론 핵얘기는 좀 다른 것같다. 사실 통일되면 강대국 틈바구니에 있는 통일한국은 핵을 가지고 있어야 싶다. 하지만 지금 북한핵은 없애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안다. 내용은.

“한국전의 개전 초인 19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 지휘권을 미군에 이양했다. 그리고 미군은 유엔군이 됐다. 당시 한국군은 모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당연히 유엔군의 책임자인 미국 대통령이 한국군 포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죽은 미군 병사의 유해를 놓고 송환을 노력하듯이 살아 있는 한국군 포로 송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도 비슷한 내용을 보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8월6일에 건의문을 보냈다고 알려졌다.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국민의 생명과 국토의 보전을 책임진 대통령의 책무이며 문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썼다. 또 2017년 7월 발표한 대통령 100대 국정과제에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한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원칙을 밝힌 것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앞서 분명한 해결을 하는 것이 역사적 사명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임에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다. 남기고 싶은 말씀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일부 국민들이 마치 독립투사의 희생 이상으로 극한 반응을 보인 것에 비하면 국군 포로의 희생을 잊어버리는 것은 역사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외국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장에 나가겠나. 국가가 지켜야 할 기본이다. 미국이 유해 송환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다. 문대통령 또 트럼프 대통령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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