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초기 인사들의 도전과 성공을 통해 LA를 중심으로 한 재미교포 사회 30여년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항공정비 기술자, 운전학교 교장, LA시장 보좌관, 초등학교 교장 및 음식점 사장, 의사, 공인회계사, 경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교포들에 대하여 중앙일보 미주판 칼럼으로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목차
LA-서울길 25년 지킴이 – 항공정비 기술자 강영구 꽃밭에서 등 대표적인 동여 150여 곡 작곡 – 동요작곡가 권길상 35년간 고향맛 전해온 떡 할아버지 – 김방아 대표 김명한 고국소식 물어다준 까치방송인 – 한국 첫 TV 아나운서 김봉구 교육과 봉사로 지낸 한평생 – 남가주 한국학원 이사 김수안 모국에 뭔가 바치고 싶었다 – 조국에 드리는 탑 헌납 김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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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영아이화여대 신문학과 졸업. 뉴욕대학 대학원 공연학과 졸업. 1968년 <중앙일보>에 입사, 1972년 이래 미국에 거주하며 <중앙일보> 미주본사 외신부장, 특집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현재 전문위원이다. 아시아 · 태평양계 미국인 예술가 협회 이사로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주요 번역서로 재일교포 채수명의『생명과 희망』영역출판, 테네시 윌리엄스가 마리아 세인트 저스트에게 보낸 서간집『다섯시의 천사』,퓰리처상 수상작가 랜퍼드 윌슨의 수상 희곡집『탤리가의 빈집』등의 번역서가 있고, 저서로는『한국인입니다』『대륙에 뿌리 뻗는다』『미국을 및내는 한국인들』등이 있다. 국제 PEN U.S.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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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전문위원 고영아씨 23일 출판기념회
LA중앙일보] 발행 2003/01/21 미주판 3면
본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영아씨의 신간 ‘미국땅에 심은 한국(뿌리출판사)’의 출판기념회가 23일(목) 오후 6시30분 용궁 식당에서 열린다.
중앙일보에 연재됐던 ‘LA한인타운-그시절 그사람’ 시리즈의 글들을 모은 ‘미국땅에 심은 한국’은 창의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초기 LA 한인사회를 형성해오는 한인 인사 45명의 인생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정계와 학계, 법조계, 의료계 등 각 분야에 진출한 한인들을 소개한 이 책은 이민 1백년에 2백만이 넘는 한인사회를 만들어온 이민 선배들의 모습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화여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를 받은 저자는 중앙일보 미주본사 논설위원과 출판팀장을 거쳐 현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독광부 출신 올드타이머’ 박형만 노인센터 이사장이 최근 자신의 자서전인 ‘향기로운 나의 인생: 서독광부의 아메리칸 성공 이야기'(사진)를 내놨다.
박 이사장은 충남 공주 빈농의 10남매중 막내 아들로 태어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년기엔 대학진학후까지 이어진 가난때문에 중도포기하고 서독광부를 지원했고 LA에 도착후 한인타운에서만 47년간 거주한 ‘올드 올드 타이머’다.
박 이사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연출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잘 살았던 못살았던 간에 열심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의 기록을 통해서 배울 것은 배우고 피할 것은 피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총 8부로 구성된 그의 책에는 1000미터 땅속의 광부생활에서 독일국민에게 배운 일,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을 비롯해, 부인을 만나 미국에 온 여정, 동포사회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한 일들, 돈을 벌기위해서 겪었던 실패를 소개했다.
또한 후반부에는 4.29폭동에서 배운 교훈, 마지막으로 자녀를 교육하면서 얻은 것을 기술했다. 책 뒷부분에는 영어 요약이 36페이지에 걸쳐 있다.
한편 박이사장은 미국으로 건너와 청소회사에 취업하면서 막노동부터 시작해 접시 닦기와 잔디 깎기 등 힘든 생활을 거쳐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발판을 다졌다. 현재는 부동산 재벌 소리도 듣는다. 그는 또 한인사회에서 ‘자린고비’ 또는 ‘구두쇠 영감’으로 통한다. 하지만 자신이 절약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검소하다. 만희 복지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독일 간호사 출신 부인 이숙희씨와 슬하에 장성한 네딸이 있다.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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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센터 박형만 이사장 28일 출판 기념일…”내 삶이 사람들에게 도움됐으면…”
[LA중앙일보] 발행 2015/01/26 미주판 12면
20명에 생활지원금 전달도
‘서독광부 출신 올드타이머’ 박형만 노인센터 이사장이 최근 자신의 자서전인 ‘향기로운 나의 인생: 서독광부의 아메리칸 성공 이야기’의 28일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가주 주립 교도소에서 한인 수감자 김모씨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박형만 선생님께. // 중략 // 84년도 생이며 경북 **에서 자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와 세상 물정 모르며 아무 목표도 없이 살았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이러저런 일을 하며 돈에 재미들고 약에 재미들어 살다 한번의 악한 마음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 감옥에서 수감중인 못난 죄인입니다. // 중략 // 저에게 혹 선생님의 책 한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는지요. 어른의 지혜를 배우고 삶을 본받아 좀 더 옳게 제 인생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이하 생략
김**에게 // 우선 각오와 결심을 끝까지 포기마시고 새 하늘을 바라보며 견뎌내십시요. 무척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중략// 아무쪼록 끝까지 자포자기 마시고 먼 미래를 내것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1월21일 박형만 드림.
박이사장은 다음날 바로 책한권을 주소지인 주교도소 보냈다. 그는 “편지를 받고 하루밤을 꼬박 샜다. 그냥 단순하게 내 삶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책을 냈는데 이 편지를 받고 매우 감동을 받았다”며 “아마도 고향 공주에 있었거나 조금만 삐뚤어졌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생각하며 삶을 뒤돌아 봤다”고 말했다.
또 박 이사장은 “앞으로 이번 출간이 계기가 돼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돼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면서 “불우 이웃 돕기에도 비즈니스에서 거둔 것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둬보고 싶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를 갖는 28일에는 박이사장이 만든 만희복지 재단을 통해서 생활지원금으로 총 1만달러 수여식도 갖는다. 대상은 장애우,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이다.
허브웨슨 LA시의장실, LA오피니언지, APAC, UDLA, KYCC, 등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접수를 받아 재단 심사위원회를 통해 선정된 대상자 20 명에게 각각 500 달러씩 전달한다. 행사는 28일(수) 오전 11시 노인센터 2층 강당에서 열린다.
혈혈단신 북한에서 피난길에 오른 열여섯 살 소년 이범영은 피난길을 가로막은 국군 헌병대에 붙들려 사리원에서 군 트럭에 실려 전선으로 간다. 군번 없는 소년병사로 100일 동안 6.25 전쟁에 참전하던 중, 정식 국군 군제에 편입되어 중부전선, 동부전선 등 최전방에 투입되어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로 휴전협정 조인 날까지 만 3년을 전장에서 보낸다. 중공군, 인민군과 고지를 두고 빼앗고 빼앗기는 전투를 벌이면서도 도무지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우직함, 그리고 옳은 일이라면 물러설 줄 모르는 강직함, 용감무쌍한 전투로 그는 다대한 무공을 세우고 수많은 훈장, 표창을 받으며 군 상관들의 눈에 띈다.
그는 상관들의 권유에 의하여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보병학교를 거쳐 마침내 정규과정 육군대학에 입교한다. 그때 육군대학 동기는 전두환, 김복동 등 육사출신들도 함께였다. 육군대학을 수석 졸업한 그는 월남전에 파견되어 처음 십자성부대로 갔다가 사단장의 요청으로 맹호부대로 측방전출되어 밀림 속에서 월맹군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월남정부로부터도 훈장을 수여받는다.
뛰어난 전술가로, 영특한 지휘자로, 군 생활에서 표창, 훈장을 무려 40여 개를 수여받은 육군사상 보기 드문 군 경력을 보인 그는 마침내 대망의 장군 진급을 눈앞에 두게 된다. 아무런 인적 배경이나 학교, 고향 선후배의 배경도 없이 군 조직에서 그는 만인의 인정을 받아 마침내 군 장교들의 꿈인 장군진급을 눈앞에 두고 돌연 전역서를 제출하고 만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장군이 되기에는 인사치레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회고록은 한 점 얼룩 같은 것도 섞이지 않은, 진실 그대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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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유소년 시절 1. 우리 집안 이야기 한학자 할아버지 이선우 영농 선구자 아버지 이승록 자애로운 어머니 윤복담 누님 그리고 아우들
2. 어린 시절의 추억 나의 고향 동곡리 삼성리교회의 추억 덴산 그리고 당꾸비나루 명절에 얽힌 이야기 당꾸비강에서 죽은 육촌형 여섯 살에 초등학교 입학
제2장 육군 사병 시절 1. 6·25 전쟁 속에서 내무지서 유치장에 감금되다 피난, 그리고 국군에 입대 군번 없는 무명용사 100일 2. 생사 넘나드는 전투를 치르며 중공군의 포위망 속으로 중공군의 피리 소리 빨치산 토벌대에 투입되다 동부전선 간성 지구 전투 월비산 전투에서 패배를 맛보다 죽기살기 208고지 전투 인민군 형과 국군 동생의 만남 오대산 공비 토벌 작전
제3장 초급장교 시절 1. 육군 소위에 임관되다 간부후보생 교육을 마치고 남한 땅에서 잠깐 만난 아버지 동부전선에 투입된 햇병아리 소위 지휘관으로서 경험을 쌓다 2. 철의 삼각지대 금성 지구 전투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용감무쌍한 우리 소대원들 머리 위에서 터지는 중공군 수류탄 40명 중 3명만 살아남다 피어린 고지를 적에게 넘겨주고 3. 교관으로 중대장으로 휴전 이후 첫 후방 근무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수석 졸업 대학 진학과 중퇴 사단 대표 중대장 1군 군사고문단장 카네이 장군 육군보병학교 교관이 되어
제4장 고급장교 시절 1. 육군대학 교관이 되다 육군대학 수석 졸업 육군대학 교관으로 강단에 서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로 발령 2. 월남전 파병 제1군수지원단 부단장으로 맹호부대 대대장으로 정글 속에서 벌인 창군 기념 사단 작전 3. 참모로 활동하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전쟁계획 장교 1군 정보처 기획과장으로 3군단 정보참모가 되다 인민군이 파 내려온 땅굴 군단 작전참모를 겸하다 육군본부 진급 심사위원으로 4. 한국군 최강 제2사단 17연대장으로 매일 4킬로미터 달리기 중대장에게 자율권을 주다 불리해도 정직하게 보고하라 가슴 아팠던 일들 이런 일 저런 일 군인 가족 사격 대회
제5장 전역 이후 이민 시절 1. 장성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장군의 길목에서 대한선박 비상계획관 시절 대한선박을 퇴직하고 2. 새로운 인생의 이민 생활 직업을 찾아서 미국 동부 관광 구역장의 직분을 맡다
제6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 1. 빚 얻어 시작한 신혼생활 아내와 첫 만남 신혼 시절의 애환 나의 아내 사랑법 없는 살림 털어 남 도와주며 우리를 도와준 처제 2. 아들과 딸의 양육 시절 첫아들 태일을 얻다 네 번 전학 다닌 초등학교 시절 영재로 소문난 중고교 시절 당찬 딸 성희 나의 자녀 교육관 3. 현명한 며느리와 의젓한 손자 태일의 입대 며느리 김문실과 사위 김문상 의젓하고 똑똑한 손자 한용 4. 대책 없이 보낸 아들딸의 외국 유학 아들은 미국으로 딸은 프랑스로 미국 대학 교수가 된 태일 5. 세계 유명 인사가 된 아들 고마우신 하나님
| 부록 | 1. 내 사후 시신을 기증하라 2. 내 장례식은 이렇게 하라 책 뒤에 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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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미국 청소일…기구한 삶의 이야기
[LA중앙일보] 발행 2014/02/10 미주판 12면
소망소사이어티 홍보대사 대령 출신 이범영씨 회고록 내
이범영(오른쪽)씨와 부인 이봉월씨가 회고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6.25 남침 전쟁과 베트남 참전 군인으로 대령으로 예편한 이범영 소망소사이어티 홍보대사가 자신의 군생활과 미국에서의 삶의 발자취를 모은 자서전 ‘이범영 회고록: 폭풍속의 고독한 길'(동학사 간)을 내놨다.
그의 책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월남할 수 밖에 없었던 기구한 순간부터 육군 사병 시절 사선을 넘나들었던 상황, 소위가 됐던 일, 월남전 파병에서 한국군 최강의 2사단 17연대장으로 겪었던 일이 소개됐고 아울러 이민와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소일을 했던 것을 가감없이 소개했다. 아울러 아들 이태일 텍사스 대학 교수가 ‘후즈후’에 실려 가족들이 기뻐했던 일까지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이씨는 “공부하느라고 바쁜 1남1녀 자녀에게 아버지의 살아온 얘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웠다”며 “만약 북한에 있는 5명의 동생을 아들과 딸이 만난다면 아버지에 대해서 들려줄 얘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민와 남가주에 거주하며 성가대 지휘자와 가나안 한국학교 교사로도 일했던 소시민, 세리토스 거주 80대 양승호(87·얼굴)씨가 최근 자신의 이민수기 ‘사막에도 꽃은 핀다(표지)’를 출간했다.
총 15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에 이민온 한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만한 스토리가 재미있게 소개돼 눈길을 끈다.
양씨는 43세인 1976년 미국에 도착해 한국과 미국에서 거주한 햇수가 딱 절반씩이다.
그는 “오래전 우연히 안자 보레고 사막에 나들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며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피우듯 우리 한인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영광의 꽃을 피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한다”고 수기 제목의 이유를 설명했다.
책에서 눈에 띄고 재미있는 한토막은 이렇다. 양씨가 비자를 받기 위해서 대사관에 갔다. 이날 만난 영사에게 보이스카우트활동 한 것과 1974년 노르웨이 세계 잼버리 대회에 한국 파견단 단장으로 대원 40여 명을 인솔하여 다녀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갑자기 영사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미국은 당신과 같이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이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에 가도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잘 살것”이라고 격려해줬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양씨가 하와이에서 입국수속한 얘기, 자녀들의 입학수속,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겪었던 웃지못할 이야기 등이 수록돼 있다. 뒷부분에는 양씨의 여러 사진들이 수록돼 재미를 더한다. 영어판(Flowers Bloom Even in the Desert)도 함께 출간됐다.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 김영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김영옥은 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한 전설적인 작전장교로 한국정쟁 때는 한반도 휴전선 60km 북상의 주역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그는 영웅이었지만 국경을 초월한 인도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지켜왔으며, 여성·아동·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목차
서문/취재기
제1부 한국의 아들 로마해방 /독립운동가의 가족
제2부 김영옥 신화로 물드는 유럽 전설을 기다리는 장교 /전설은 시작되고 /악몽의 전투-몬테 카시노 /전설에서 신화로
제3부 승리를 향한 마지막 진통 브뤼에르 탱크작전 /비운의 비퐁뗀느 /영웅의 귀환
제4부 아버지의 나라로 다시입는 군복 /아버지의 나라로 /베니대 그룹 /소양강 철수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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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우성
현직은 New America Media 한국부장. AP통신 기자상, 미국 소수계 기자상,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후보가 됐으며, Stanford 대학의 Knight Fellow로 선발됐고, 세계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PBS-TV의 언론인 다큐멘터리 시리즈‘Democracy on Deadline’의 제작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는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 7년 전 미국에서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하는 대일소송을 이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책의 출간도 몇 년 늦어졌다. 이 같은 경력의 기자가 5~6년에 걸쳐 발로 뛰며, 한국·프랑스·이탈리아·미국 등 철저한 현장 취재, 참전용사 등 수백 명의 인터뷰, 2만장이 넘는 미군 전투상보, 기타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집필한 역작이 『영웅 김영옥』이다. 그는 non-fiction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겠다는 초심을 관철하기 위해 2년간 아예 직장까지 떠나, 풀타임으로 매달려 결국 집필을 마무리 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이 이번 출판에 대한 그의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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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누가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가?
현재 미국에서 80세의 노인으로 암투병을 하고 있는 김영옥은 미국과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등지에서 전설적인 전쟁영웅으로 불리며, 미국 내 차별받는 자들 사이에선 그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영웅적인 지도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2003년 그의 한국에 대한 사회봉사활동을 높이 사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으며, 2005년에는 한국전에서 그의 활약을 인정해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한국이민박물관은 그의 기념관을 영구설치 운영하기로 결정했으며, MBC스페셜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웅 김영옥’이란 다큐로 다루었다.
2.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부르게 하는가?
전쟁영웅으로서의 김영옥
그는 2차대전 당시 아무도 잡지 못했던 독일군 포로를 대낮에 잠입하여 생포함으로써, 로마해방을 앞당기는 주역이 되면서 ‘전쟁영웅’의 길을 연다. 그는 작전참모로 유엔군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피사로 입성할 수 있게 전략을 구사하는가 하면, 탱크가 내려갈 수 없는 산비탈에 탱크를 내리는 전략으로 독일군 탱크부대를 전멸시키기도 한다. 또한 기존 유럽식 전쟁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전략으로 연이은 승전을 거듭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군사교본을 다시 쓰게 만든 장본인이 된다.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자원한 김영옥은 패전을 거듭하던 1대대의 대대장이 되어 모든 소대에게 승리를 맞보게 하면서 사기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38선을 60km나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차별받는 자의 영웅으로서의 김영옥
그의 사회적 헌신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수백 명의 전쟁고아들을 돌볼 때부터 시작된다. 전후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평생을 사회봉사활동에 바치게 되는데, 이는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유색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지키고 신장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미국 내의 한인건강 정보센터, 한인 청소년회관,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소 등 많은 기관이 그의 노고의 결과로 운영되고 있다.
전쟁과 소수자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재미일본교포들에게도 우상이 되었지만, 일본의 기업위안부 문제에서 만큼은 일본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국제 소송을 지원하는 데도 물러섬이 없는 애국자이기도 하다.
프랑스.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 , 미국 은성무공훈장 수훈 한국 태극무공훈장, 사회봉사로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한국이민박물관 영구전시관 설치 결정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재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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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김영옥 대령 일대기 출간
LA중앙일보] 발행 2005/12/09 미주판 5면
2차대전.한국전 승전에 큰 몫, 미주 한인 권익신장에도 기여
한국계 전쟁영웅 김영옥(86)의 활약상을 담은 책 ‘영웅 김영옥'(한우성 지음.북스토리)이 한국에서 발간됐다.
현재 미국에서 암투병 중인 김영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유색인 미국 장교로 활약한 전설적인 전쟁영웅이다.
그는 2차 대전에서 독일군 포로를 대낮에 잠입해 생포하면서 로마 해방을 앞당기는 주역이 됐다.
작전참모로서 유엔군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피사로 입성할 수 있게 전략을 구사하는가 하면 산비탈에 탱크를 내리는 전략으로 독일군 탱크부대를 전멸시키는 등 기존 전쟁방식을 뒤흔든 전략으로 승전을 거듭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해 38선을 60㎞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서 뿐 아니라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가로서도 존경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수백명의 전쟁 고아들을 돌봤던 그는 전후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유색인 등 약자의 권익을 신장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미국 내의 한인건강 정보센터 한인 청소년회관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소 등 많은 기관이 그의 노고의 결과로 운영되고 있다.
1945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최고무공훈장을 195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십자무공훈장을 받았던 그는 2003년 한국에 대한 사회봉사활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올해에는 한국전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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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 별세
[LA중앙일보] 발행 2006/01/01 미주판 1면
최근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위독했던〈본지 12월 24일자 A-1면>2차대전 및 한국전쟁 영웅 김영옥(사진) 예비역 육군 대령이 지난 29일 오후 9시쯤 결국 숨을 거뒀다. 86세.
이날 별세한 고 김 대령의 유해는 LA시내 시더스 사이나이 메디컬센터 영안실에 안치됐으며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재단 측은 신년연휴 직후 장례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조카 일가족이 있다.
한편 LA총영사관(총영사 이윤복)은 한국 정부가 지난 10월 고 김 대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한 태극무공훈장을 오는 4일 도착하는 새해 첫 외교행낭편으로 입수해 영결식장에서 추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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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옥 대령은 누구] 한인 빛낸 ‘전쟁 영웅’
[LA중앙일보] 발행 2006/01/01 미주판 2면
2차대전 연전연승 로마 해방의 주역
2차대전에 정보장교로 참전했을 당시의 김영옥 대위가 상관으로 부터 훈장을 받고있다.
29일 별세한 고 김영옥 대령은 미국에서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스런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미국서 태어난 한인 2세로서 2차세계 대전이 터지자 ‘니세이'(일본계 2세) 병사들을 이끌고 유럽전선에서 맹위를 떨쳤다.
전원 일본계 병사들로만 구성됐던 미 육군 442연대 100대대는 ‘끝장을 낸다(Go For Broke)’를 구호로 내걸고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전선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는 100대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상륙작전에 참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로마 해방의 주역이 됐다. 곧이어 그는 피사를 해방시킨 뒤 연합군 최초로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올라간 군인이었다.
이후 김 대령은 독일 치하에 있던 프랑스 동북부 보슈산맥 인근의 브뤼에르. 비퐁텐느 지역을 해방시키며 오늘날 미국의 군사 교본을 다시 쓰게 만드는 장본인이 됐다.
지난해 2월 4일 LA다운타운의 리틀도쿄에서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김 대령에게 전달한 필리페 라흐유 LA주재 프랑스 총영사는 “프랑스는 당신의 희생과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단상 옆에 앉은 김대령 앞에 몸을 낮췄다.
고 김영옥 대령의 진가는 전역 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자원입대해 미 육군 제7사단 31연대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세운 무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한-미 연합군이 38선 이남에 형성돼 있던 전선을 60km나 북상시키는 과정은 그가 이룬 불패신화에 힘입은 바 크고 이 사실은 한국 국방부도 인정하는 공식 전사다.
그는 2차대전에서 세운 전공으로 레종 도뉘르 훈장을 비롯 미국 특별무공훈장과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을 받았으며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남가주 일본계 커뮤니티는 그를 기려 ‘잊혀진 용맹(Forgotten Valor)’ 이라는 기록영화를 만들어 냈고 언론인 한우성씨는 최근 ‘영웅 김영옥'(북스토리)이라는 전기를 한국에서 발간했다.
무도 인생 55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역 무도인을 꿈꾸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지도자의 길을 걷는 김진환 그랜드마스터, 그의 인생과 철학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미국의 깐깐한 유대인 학부모들이 그의 도장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성공한 변호사가 어린 시절 그의 가르침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와 제자가 되기를 청한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 그는 단순히 강인한 체력을 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유대인 제자들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탈무드를 공부하고, 동양무도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예와 효의 근본을 강조하는 등 정신수양은 그에게 큰 축이다. 어려서부터 각종 무술대회를 휩쓸고 3년간 입산수도를 통해 전통적인 무술 수련방식으로 스스로를 단련한 그는 존경받는 태권도 대사부이면서 동시에 호신무도(護身武道)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평생 올곧은 무도 정신으로 미국 헐리우드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인생 이야기 속에서 냉철한 그만의 자기경영 철학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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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나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꾼다
CHAPTER 1 도전과 용기로 살아온 나의 삶, 나의 길 고등학생 무도 사범 | 나의 가족 이야기 | 운동과 싸움의 차이 | 자만하다가는 임자 만난다 | 늦으면 죽는다 | 산중의 나와 홀로 마주하라 | 무술영화를 재현하다 | 맹수를 만나 살아남는 법 | 호신무도의 창안 | 도전하면 황소 뿔도 뽑을 수 있다 | 실력으로 허세를 제압하라 | 모방을 부끄러워 말고 뛰어넘어라 | 기적 같은 국제 무도대회 개최 | 바닥에 추락했을 때 견디는 힘 | 운명을 찾아 떠난 길 | 똥자루가 될 것인가, 사람이 될 것인가 | 스님의 사주를 보는 거사 | 한국 해병대에 입대한 아들 | 늘 새로운 시작 | 내 인생의 영원한 감성어 ‘어머니’
CHAPTER 2 내 안의 참된 용기를 끌어내라 -왜 동양무도인가 유대인 학부모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 왜 태권도를 배우는가 | 한두 번 해보고 안 된다 말자 | 대담한 상상력 그리고 도전 | 살아 있는 눈빛 | 진정한 성공은 부모 공경에서부터 | 아버지의 의자 | 운명을 바꾸는 최고의 용기 | 크고 빠르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 | 참된 용기에 관한 생각 |‘꼴값’ 제대로 떨어라 | 자녀교육의 뺄셈과 덧셈 | 아이들은 부모의 진짜 관심이 필요하다 |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라
CHAPTER 3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무도인 -후배 무도 사범들에게 당부하는 글 좋은 습관의 선순환 법칙 | 영원한 현역을 위하여 | 꾸짖어줄 스승 한 명을 가졌는가 | 진정한 지도자의 길 | 배고파도 평생 할 수 있겠는가 | 많이 읽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 | 국경 없는 사제의 정 | 제자다운 제자를 갖는 복 | 수양의 집 | 집중력은 모든 일의 시작이다
CHAPTER 4 태권도의 미래를 경영하다 잘되는 도장이 다른 이유 1-살아 있는 기 | 잘되는 도장이 다른 이유 2-매력 있는 명품 지도자 | 잘되는 도장이 다른 이유 3-차별화된 교육 내용 | 경영이란 냉정하고 비정한 것 | 태권도 사범을 선택하는 원칙 | 미국인들이 인정하는 도장 | 로케이션, 로케이션, 로케이션! | 도장의 기업화 전략 | 한국을 빛낸 미국의 태권도 개척자들 | 전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 무주 태권도원 | 거품을 빼고 본질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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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진환
1946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태권도와 유도에 입문하여 무도의 길을 걸어온 지 55년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범 생활을 했고 경남 경찰연무대회와 부산 경남 시·도 대항 무술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무도인으로서 일찍이 상승세를 탔다. 입대 명령을 받고 논산연무대와 영천 헌병학교에서 무술 사범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춘천2군단 제9범죄수사대에 헌병 무술요원으로 근무하다 월남 십자성부대에 파병되었다. 제대하고 강원도 춘천 호신무도관을 운영하던 그는 경남 밀양 제약산에 입산수도, 3년간을 자연 속에서 고전 무술의 전통적인 수련을 통해 호신무도(護身武道) 체계를 수립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서울 돈암동 승리태권도장을 운영하며 영화무술을 지도했고, 재미 태권도협회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버나디노 도장에서 사범 생활을 거쳐 2년 만에 샌디에이고에 자신의 도장을 열었고 라호야 2지관까지 오픈하는 등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이를 발판으로 1983년 샌디에이고에서 무술 최고수들이 참여하는 국제무도 페스티벌을 열어 관람객 수천 여 명의 호응 속에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를 계기로 미국 무도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스카이마셜 아트센터(Sky Martial Arts Center)를 열어 미국인 및 유대인 학부모 공동체로부터 명성을 얻었다. 지난 55년간 한국과 미국에서 그를 거쳐간 제자들은 수천여 명에 달하며, 지금은 기업 CEO, 교수, 연예인, 언론인, 변호사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대한민국 태권도 발전을 위해 한국 엘리트 교육의 산실인 대전 KAIST 인근에 세계명품태권도 도장을 열어 글로벌 인재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그랜드마스터로서‘ 진정한 용기는 주먹과 발로 남을 제압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는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며, 게으름과 타협하려는 이기심을 자기통제로 다스리라’는 철학으로, 도장을 넘어 기업과 대학에서 초청받는 인기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출판사 리뷰
– 한 편의 영화와 같은 55년 무도 인생 유난히 왜소한 체격 탓에 덩치 큰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얕보이던 한 소년이 있었다.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던 소년은 초등학교 때 유도에 입문하고 태권도와 합기도를 독학하며 관심 분야를 넓혀가다가, 앳된 소년티를 벗지 못한 고등학생 때부터 태권도 사범으로서 지도자의 인생을 시작한다. 1960년대 조직 폭력배들이 난무하던 부산의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이따금 수련생들이 깡패들과 싸움이 붙는 것을 보고 실전 방어술을 연구하여 훗날 ‘호신무도(護身武道)’를 창안하였고, 가족과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남 밀양 제약산에 들어가 자연 속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련하여 무도인으로서 크게 도약한다. 특히 무술영화를 연상케 하는 산중 수련장을 직접 만들어 수련한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올곧은 성품과 강인한 정신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참나무 기둥을 땅에 박고 그 위에 가로대를 세워 뛰어다니거나, 납자루를 박음질한 단련복을 입은 채 점프력을 키우고, 철사장 훈련을 한 당시의 경험은 수십 년 뒤 무주 태권도원의 건립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된다. 이후 미국으로 간 그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지금껏 수많은 학생들과 청·장년들을 가르쳐왔다. 그의 소망은 죽는 날까지 무도에 정진하고 가르치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 헐리우드가 인정하고 유대인 제자들이 존경하는 한국인 그랜드마스터의 자기경영 1970년대, 태권도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미국 땅에 건너간 그는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딛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경쟁자를 허하지 않는 압도적인 무도 실력을 무기 삼아 존경받는 태권도 그랜드마스터로 우뚝 섰다. 교육현장에 강제성이 없는 미국에서 그는 부모와 교사들을 대신하여 엄격하고 냉철하게 체력을 단련시키고 예와 절도를 가르쳐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운영하는 ‘스카이마셜 아츠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House of discipline” 즉, 수양의 집이라고 쓰여 있다. 풍요로운 미국 땅에서 귀하게 자라 심약하고 산만하며 자기 절제를 모르던 아이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거나 체력을 키워주는 단계를 넘어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그의 원칙이 잘 드러난다. 이곳에서 수련생들은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예의범절을 익히며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운다. 무도에 입문한 지 55년, 그의 밑에서 수련하던 코흘리개 아이들은 어느새 사회 지도자층으로 성장했고 파란 눈의 제자들이 미국 전역 각계각층의 리더로, 혹은 무도 사범으로 자라났다.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지금도 매일 새벽 앞마당 잔디가 자라날 틈도 없이 수련에 정진하고 있다.
– 인생은 끝없는 수련이어야 한다 30년을 영속하는 기업이 드문 요즘 세상에 태권도장의 영속성은 훨씬 짧다. 저자는 동료 및 선후배들이 50~60대에 도장 경영을 접고 은퇴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안타깝게 여긴다. 70세를 바라보는 그는 여전히 공개심사장에서 송판 열 장을 포개어 잡게 하고 점프하여 360도 회전 뒤돌아 옆차기로 격파할 만큼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한다. 그의 목표는 85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 점프나 격파가 어려우면 품새를 해서라도 백발이 성성한 50~60대 제자들 앞에 서는 것이 그의 꿈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다. 아무런 기반도 없던 미국 땅에서 혈혈단신으로 시작해 지금의 성공을 거두기기까지, 여러 도장과 수많은 제자들을 이끌어오며 확립해온 철학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도전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무슨 일이든 쉽사리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절실함을 심어주고 싶어서다. 태권도의 글로벌화의 사명감을 갖고 세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후배들을 위해 잘되는 도장의 차별화 전략을 공개하는 한편, 우후죽순 생겨나는 태권도장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 속에 도장을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기업화 할 수 있도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와 조언들도 충실히 담았다.
추천평
세계호신무도의 김진환 총재는 단순히 자신의 삶에서 성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바꾸어놓는 힘을 지닌 인물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엄운규 전 국기원 원장, 태권도 청도회 회장
김진환 총재가 특별한 이유는 무도인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생의 스승이라는 데 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용기와 당당한 자신감은 항상 새로운 자극이 된다. 흔들림 없는 그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중한 책에 일독을 권한다. – 정만순 국기원 원장
누구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김진환 대사부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스승이다. 나는 그를 영원히 존경할 것이다. 가슴 뛰는 삶을 살도록 나를 이끌어준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이 그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브루스 따빗(Bruce Thabit) 미국 변호사
김진환 대사부는 많은 유대인들의 몸과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켜준 스승이다. 그를 만난 뒤 나의 하루하루는 늘 새롭다. 지금의 나는 결코 그전의 내가 아니다. 나를 바꾸어주신 영원한 스승, 김진환 대사부의 삶 이야기를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읽고 싶다. – 하임 투리프(Chaim Tureff) 유대인 교수, 랍비
김진환 대사부의 가르침으로 많은 이들이 새롭게 눈 뜨고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영원한 현역을 고집하며 묵묵히 무도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이기에 많은 제자들이 국적과 직업, 나이를 떠나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한다. 지금껏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삶을 바꾸는 용기와 결단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 크리스토퍼 윌리엄스(Critopher Williams) 미국 할리우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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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이기려고만 들면 무도가 아니죠”
LA중앙일보] 발행 2015/02/25 미주판 8면
자서전 ‘리얼 챌린저’ 출간 태권도 9단 김진환 대사범
김진환 대사범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저서 ‘리얼 챌린저’(작은 사진)를 내놨다. 왼쪽부터 제자인 브루스 태비트 4단, 김대사범, 김선미 5단
“요즘 세상엔 많은 스포츠가 상대를 이기려고만 들어요.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좋지만 태권도는 육체 단련만큼 정신 수양도 중요합니다. 태권도는 자기 자신을 수양 그 자체로 봐야 합니다.”
무도 인생 55년으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 김진환 대사범(9단)이 최근 자신의 영화같은 인생을 담은 자서전 성격의 ‘리얼 챌린저’를 내놨다. 본업은 변호사인 브루스 태비트 4단, 사범인 김선미 5단과 함께 본지를 찾은 그를 만났다.
그의 도장은 할리우드의 스카이 마샬 아트센터(Sky Martial Arts Center)다. 좋은 동네 사는 미국인 및 유대인들이 자신의 아끼는 자녀를 맡기는 그 곳이다. 유대인하면 연상되는 것은 교육. 탈무드를 배우고 익히는데 태권도가 꼭 필요하다고 그의 도장을 찾고 있다.
김진환 대사범, 그랜드 매스터가 제자들에게 태권도를 통해서 가르치는 것은 4가지다. 첫째는 자세와 예절이다. 국가, 부모, 스승을 존경 혹은 존중해야함을 배우게 된다. 두번째는 자기 통제다. 자기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 극기를 말함이다. 셋째는 지혜다. 태권도를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책을 챙겨서 읽힌다. 공부는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모들이 책읽는 습관을 가르치니 좋아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로와진다고 가르친다. 마지막 네번째가 용기와 자신감을 가르친다. 몸을 단련시켜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태권도장에서 부모들이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니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제가 학부모로부터 얻을 인기때문에, 혹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런 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죠. 태권도는 무도입니다. 수련의 과정에서 결국엔 이런 것을 배우게 됩니다.”
교육 현장에서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미국에서 부모와 교사들에게서 태권도가 인기 있는 이유다.
김 사범은 마지막으로 “태권도도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 가정교육으로, 인성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액션보다는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어릴때 시작하는게 좋다. 좋은 습관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55년간 한국과 미국에서 그를 거쳐간 제자들은 수천명에 달하며, 지금은 기업 CEO, 교수, 연예인, 변호사 등 사회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대전 카이스트 인근에 세계 명품태권도장을 열어 글로벌 인재 교육에도 힘을 쓰고 있다. 기업과 대학에서 초청받는 인기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 육사 자퇴, 한국군 사병 입대, 월남전 참전, 미군 사병 입대, 미군 장교 임관, 미군 예비군, 미군 현역 복귀, 미군 중령 전역. 저자의 군 복무 이력이다. 이렇게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우리나라의 모병제 논의에 도움이 되도록 31년 미군 복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미군의 제도 전반을 정리했다. 책은 저자의 흔치 않은 인생 경로를 따라가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세계 최강 미군의 제도와 군인에 대한 혜택 등은 징병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편성으로 평시와 전시를 구분하여 운용하는 예비군 제도는, 우리나라의 모병제 논의나 국방예산 편성 및 군 개혁에 유용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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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제1장 군인이라는 운명 육사생도에서 약대생으로/논산 훈련소/KATUSA/짓밟힌 인격/월남전 참전/PX로 보직/평생의 반려자, 그리고 고마운 친구/미국 이민
제2장 미국, 제2의 조국 LA 도착 그러나/남청여바/미군 입대 권유/입대 시험과 신체검사/훈련소 입소/전반기 훈련/BCT(Basic Combat Training) 훈련/체력 테스트 통과/가족과의 재회 미군 제대로 알기- 1. 미군 입대 시험과 방법
제3장 Fort Sam Houston AIT(Advanced Individual Training: 후반기 교육)/Travel Voucher(여행경비 청산서) ACC(Army Community Center: 육군공동체)/차 구입/학과 시작/근무지 변경 신청/미국의 명절/전출 수속 Fort Sam Houston Out-Processing
제4장 Fort Dix Fort Dix/Walson Army Hospital/E-5 진급/Supply 파트 지원/시민권과 Part time job/이웃 사촌 미군 제대로 알기- 2. Walson Army Hospital 약국 구성 미군 제대로 알기- 3. 미국의 군대 제도 및 문화 1
제5장 약사 시험 차가 털리다/CQ(Charge of Quarters: 당직)/둘째 딸 출생/Rd-Up(복무 연장 신청)/Libby 소령/Promotion Board(진급 심사 위원회)/약사 시험/Grocery 가게 구입/약사 시험 합격/장교 신청/Direct Commission Application/사병 생활 결산 미군 제대로 알기- 4. 미국의 군대 제도 및 문화 2 미군 제대로 알기- 5. GI Bill
제6장 장교 임관 소위 임관/Orientation Course/OBC(Officers’ Basic Training: 장교 기초 훈련)/Brooke Army Medical Center(BAMC)/중위 진급/우려가 현실로/장교도 장교 나름/한국 전출 결정 미군 제대로 알기- 6. OER(Officer Evaluation Report: 장교 근무평가서)
제7장 다시 조국으로 미 육군 보병 2사단/Division Pharmacy Formulary(사단 약국 표준집) 작성/도난 사건 발생/차 구입/동두천 시내순찰/검은돈의 유혹/구타는 범죄/화재 발생/대위 진급
제8장 예비군으로 신분 변경 VA Medical Center/동포에게 사기당하다/Sandwich 가게 개업/공권력의 횡포/현역복귀 신청/IMA(Individual Mobilization Augmentee)로 편입/소령 진급 새로운 시작, 정보병과 무관/실패가 이끌어 준 성공/중령 진급/태평양 사령부로/사막의 폭풍 작전 미군 제대로 알기- 7. US Army Reserve 미군 제대로 알기- 8. 예비군(Reserve) 은퇴 연금 산정법 미군 제대로 알기- 9. 제대자와 그 가족들의 혜택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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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미군 사병 입대 중령 전역, 독특한 이력과 유용한 미군의 제도] 한국 육사 자퇴, 한국군 사병 입대, 월남전 참전, 미군 사병 입대, 미군 장교 임관, 미군 예비군, 미군 현역 복귀, 미군 중령 전역. 저자의 군 복무 이력이다. 이렇게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우리나라의 모병제 논의에 도움이 되도록 31년 미군 복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미군의 제도 전반을 정리했다. 책은 저자의 흔치 않은 인생 경로를 따라가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세계 최강 미군의 제도와 군인에 대한 혜택 등은 징병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편성으로 평시와 전시를 구분하여 운용하는 예비군 제도는, 우리나라의 모병제 논의나 국방예산 편성 및 군 개혁에 유용한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세계 최강, 미군의 모병제는 어떤 어떻게 운용되는가] 저자는 한국 육사생도였으나 자퇴하고 사병으로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친다. 그리고 미국에 이민한 그는 삶의 방편으로 미군 이등병으로 입대하며 군인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장교 임관을 하고 전역해 잠시 예비군으로 있다 다시 복귀해 중령으로 예편한다. 이런 저자의 특이한 이력은 그 자체로 흥미롭기만 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력의 자신의 미군 생활을 공개하면서도 미군이 어떤 제도를 가지고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미군 개개인은 국가로부터 어떤 대우와 혜택을 받는지를, 큰 비중을 실어 전하고 있다. 이를 자신의 미군 생활 가운데서도 전하지만 챕터 사이에 ‘미군 제대로 알기’란 제목을 통해 팁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책에 실린 여러 미군에 대한 여러 정보와 혜택은 징병제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고, 우리의 인식을 훨씬 넘어서 있다. 저자는 특히 사병과 장교, 예비군을 다 거치며 31년을 복무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미군들도 잘 모르는 여러 제도와 혜택을 소개한다. [합리적 미군 모병제가 한국군 선진화에 도움 되길] 저자가 책에서 알려주는 미군의 예비군 제도는 특히 독특하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제도는 끊임없이 군 개혁이 이슈이고 모병제 논의마저 불붙은 우리나라에서 참고한다면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예비군은 우리와 같이 모든 전역자가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전역자 중 희망자에 한해 예비군에 복무한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하면서 월 1회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예비군 수당과 군인에 준하는 혜택을 받으며 전시에는 동원된다. 그리고 예비군으로 복무하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현역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 예비군을 통해 평시에는 불필요한 병력을 최소화하여 국방예산을 절감하고, 전시에는 이를 활용 병력 운용에 부족함이 없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군으로 복무는 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우리 군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군 제도 전반을 정리했다며, 이 책이 우리 군의 선진화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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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인물 오디세이] ‘미군과 나의 인생’ 펴낸 앤드루 정씨
LA중앙일보] 발행 2017/01/23 미주판 14면
이등병서 약사 장교, 다시 정보 장교로…’군인은 내 운명’ 육사 자퇴 후 약대 졸업 이민 와 석 달만에 입대
김상진 기자
4년 후 약사시험 합격 약사장교로 파격 임관
전역 후 예비군 편입 정보장교로 16년 복무
31년 군 생활 은퇴하고 최근 미군 관련 책 출판
군인의 삶은 운명이었다는 이 남자, 이등병으로 시작해 중령으로 전역하기까지 미군에서 31년 세월을 보낸 앤드루 정(71)씨다. 왜 아니겠는가. 유년시절부터 군인을 동경해 육사 생도의 길을 걷다 약대 졸업 후 이민 와 약사 장교를 거쳐 정보 장교로 복무한 걸 보면 말이다. 최근 미군 제도와 혜택을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엮어 책을 출판한 그를 만나봤다. 인터뷰 내내 그는 고희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반백년 전 일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놀라운 기억력과 집중력으로 그간의 삶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
#약사, 미군이 되다
남원 출생인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주에서 다닌 토박이다. 전주고 졸업 후 어려서부터 동경했던 군인의 꿈을 좆아 1964년 육사 24기로 입교했지만 1년 만에 자퇴 후 1965년 원광대 약대에 입학했다. 2학년 때 등록금 마련할 형편이 안 되자 육군에 입대했고 1966년 월남전에 참전해 그곳에서 2년을 보냈다. 1968년 제대 뒤 학교를 마치고 한독약품 광주지사에 취직했다. 취직 후 미국 약사 이민을 준비해 1974년 약대 동문인 아내와 5개월 된 딸을 데리고 LA에 왔다. LA에 온 그는 주유소며 밤 청소며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엔 빠듯했다. 그러다 지인들의 통역을 해주면서 알게 된 모병관이 그의 이력을 듣고는 군 입대를 제안해 와 이민 온 지 3개월 만에 미 육군에 입대하게 된다.
“입대 후 입소한 육군 훈련소에선 육체적 고달픔보다는 낯선 땅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을 아내와 딸 아이 생각에 더 괴로웠죠. 그래도 어떡해요? 가족들 이끌고 살아야했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착같이 견딜 수밖에요.”
두 달간의 고된 훈련병 생활이 끝난 후 LA에 있던 아내와 딸을 데리고 약사보조 교육을 받기 위해 텍사스 샌안토니오 소재 샘휴스턴 기지 내 군의학교로 갔다. 4개월 후 그는 100여명의 동기들 중 탑5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교육을 마치고 1975년 뉴저지 포트 딕스에 배치돼 부대 내 약국에서 근무하게 됐다. 당시 한 달 급여는 300달러 정도였는데 이 빠듯한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밤에는 택시운전을 했다.
“퇴근 후 4~5시간씩 택시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 5시간 자기도 힘들었죠. 게다가 당시엔 약시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때라 돌이며 보면 미국생활 중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병에서 장교로
억척같은 주경야독 끝에 1978년 그는 뉴욕주 약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장교로 진급도 했다.
“제가 소위로 임관했을 때 소속 부대 내에선 큰 뉴스거리였죠. 동양인 장교라는 것도 그러했지만 사병이 장교가 되는 일은 아주 드문데다 입대 4년 만에 소위 임관을 했으니 화제가 될 수밖예요.”
그 후 그는 한국 주둔 미군에 자원해 1980년부터 1년간 미 2사단 약국장으로 근무했고 대위 진급도 했다. 그리고 한국 근무를 끝으로 7년간의 현역군인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당시 봉급도 혜택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치열한 진급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지 실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고심 끝 전역을 결정했습니다.”
1981년 전역하자마자 그는 휴스턴으로 이주해 재향군인 병원 약사로 취직했다. 연방 공무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3년간의 직장 생활은 그에게 군 시절에 대한 향수병만 키웠다.
“군대는 상하관계가 분명하고 능력에 따른 보상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사회생활은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군 생활이 적성에도 맞았고 봉급과 혜택도 훨씬 나았기에 현역 복귀 신청을 했죠.”
당시 예비군이었던 그는 유럽이나 한국 주둔 미군 부대로 발령을 희망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IMA(Individual Mobilization Augmentees)편입을 선택했다. IMA는 평소엔 민간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1년에 3~4차례씩 육군 예비군센터의 명령이 있으면 지정 부대에 입소하여 현역 군인들과 똑같이 최소 2주정도 근무하는 예비군이다. 그렇게 1984년부터 IMA로 복무하면서 1988년 소령으로 진급한 그는 이듬해 정보장교에 지원, 정보 계통과는 상관없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파격 발탁돼 국방정보본부와 태평양사령부에서 IMA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그리고 1995년 중령으로 진급 했다.
“미군에 몸담으면서 언젠가는 한반도와 북한 문제를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마침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정보장교를 모집한다는 걸 보고 이거다 싶어 지원해 기적적으로 선발됐죠. 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군에서 성공여부는 자기하기 나름이에요. 성실히만 하면 성공과 도전의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니까요.”
#사업가로도 성공 일궈
그는 IMA 예비군으로 복무하면서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를 잡아갔다.
1984년 IMA 편입 후 재향군인 병원을 사직한 그는 휴스턴 한인 밀집지역에 작은 약국을 개업했다. 처음엔 경험 부족으로 폐업을 하기도 했지만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약국을 오픈 한 이후엔 5년 만에 약국 3곳을 운영할 만큼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투자회사도 설립해 경제적 성공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2005년 9월 60세 생일이 되던 날 그는 전역 신청을 했다. 미군으로 살아온 지난 31년 세월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은퇴 계획대로 LA로 이주했다.
현재 그는 LA에서 투자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며 LA한인미군재향군인회 이사장으로 재임하는 등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 2012년부터 미군제도와 혜택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집필을 시작, 지난해 9월 ‘US Army: 미군과 나의 인생’을 출간하기도 했다. 3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저서는 미군 입대시험부터 미군 제도는 물론 예비군 은퇴연금 산정법, 제대 후 가족혜택까지 미군에 대한 모든 것이 그의 성격처럼 꼼꼼하다 못해 치밀하게 기술돼 있다.
“미군에 관심 있는 이들 특히 이제 막 이민 와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군에 관심 있는 한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싶습니다.”
그를 보고 있노라니 노병은 죽지도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듯싶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군인으로서의 삶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걸 보면 말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업계에서 동양인 최초·최연소로 총주방장이 되어 현재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 내 옐로테일 재패니즈 레스토랑 앤 라운지(Yellowtail Japanese Restaurant & Lounge)의 주방을 총지휘하고 있는 한국인 요리사 아키라 백.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유명 인사의 파티 음식을 성공적으로 준비해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인기 요리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출연하여 화제를 일으켰던 그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잡지《하스피탈리티》가 선정한 2008년 ‘떠오르는 스타(Rising Star)’ 요리사이며 ‘요리업계의 오스카 상’인 제임스 비어드 상의 후보자로 올랐던 실력 있는 요리사이다. 이 책은 거침없는 도전과 모험으로 세계무대를 장악한 그의 열정적인 삶과 성공 전략을 담은 책이다.
세계 랭킹 톱 5에 들며 프로보더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던 아키라 백은 발목부상 때문에 스노보드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의 순간에서 희망을 찾았고, 요리사라는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 흠모하던 스승을 만나게 된다.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만들며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된 아키라 백의 거침없는 도전과 성공 이야기는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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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라스베이거스까지 도전과 모험이 있었다
1장 아키라 백, 라스베이거스를 요리하다 1코스 옐로테일의 그랜드 오프닝, 인생 2막을 위한 나의 쇼 2코스 옐로테일의 풀베팅과 요리 인생을 건 나의 도박 3코스 라스베이거스 특급 호텔들의 셰프 영입 경쟁 4코스 방어가 힘차게 헤엄을 칠 수 있기까지
2장 소년, 스노보드를 만나다 1코스 야구 소년, 미국에 가다 2코스 치즈버거를 주문하지 않는 한국인 소년 3코스 내 존재를 알릴 또 다른 도구, 스노보드 4코스 무명의 동양인 선수 ‘생독’ 세계 톱 5가 되다 5코스 스노보드를 알리기 위해 한국에 오다
3장 요리사가 된 스노보더 1코스 영원히 날아가버린 세계선수권대회 2코스 일식 세계로의 입문, 금발 염색머리를 빡빡 밀다 3코스 일식 요리사가 되려면 밥의 달인이 되라 4코스 ‘생’에서 ‘아키라’로, 켄이치 식당의 부주방장이 되다 5코스 오감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 작품, 요리
4장 세계 최고의 셰프를 향해 1코스 트러블 없는 주방의 트러블 메이커 ‘나가요’ 2코스 늦깎이 공부-요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3코스 AIC에서 만난 친구, 철학도 요리사 황성원 4코스 요리의 장인이 되기 위한 액션 플랜, 요리 여행을 떠나다
5장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모험 1코스 모리모토에서의 끝없는 굴 까기 2코스 배움의 기쁨, 마코토의 괴롭힘 3코스 세계적인 스타 셰프, 노부의 조용한 카리스마 4코스 일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방식에 마음을 열다 5코스 세상의 숨은 스페셜 롤을 찾아서 6코스 필라데필아에서 텍사스까지, 순례의 마무리 7코스 노부에게서 배운 것 카리스마와 세심함, 자기만의 스타일
6장 꿈을 향해 한 걸음 1코스 ‘굿 잡’을 외치던 셰프들의 멘토, 마츠히사 노부 2코스 클린턴이 감동한 은대구 쌈 요리 3코스 아이언 셰프와의 배틀 4코스 한식의 세계화, 알리지 않으면 먹을 기회도 없다 5코스 일식을 넘어 한식의 에센스를 담은 나만의 요리로 6코스 휴대전화를 쓰레기통으로, 옐로테일의 주방 규칙
7장 세계 최고를 향한 힘찬 날갯짓 1코스 옐로테일 간판에 ‘Chef Akira Back’을 2코스 요리의 꿈, 미국이라는 큰 무대에서 펼쳐라 3코스 영어 실력보다는 음식 솜씩가 먼저 4코스 요리와 스포츠의 공통점
스페셜 코스 한식의 세계화, 이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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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키라 백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셰프로 손꼽히는 한국인 요리사. ‘옐로우테일 제패니즈 레스토랑 앤 라운지(Yellotail Japanese Restaurant and Lounge)의 총주방장으로, 라스베이거스 호텔 업계에서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총주방장이 되었다. 청소년 시절 세계 랭킹 10위권의 프로 스노보더로 활동했던 그는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요리사가 되었다. 〈아이언 셰프〉로 유명해진 마사하로 모리모토와 요리 명장 노부 마츠히사를 사사했으며 비일본계로는 처음으로 유명 일식 체인 〈노부 마츠히사 아스펜〉에서 수석 주방장을 맡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유명인사 파티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명성을 쌓았고, 2008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출전했다. 현재 20여명의 요리사들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간단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음식 철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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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나만의 요리로 천 개의 맛을 이겨라! 미 전역의 주방을 모험하며 자신만의 맛을 창조하고 세계무대를 장악한, 라스베이거스 최강 요리사 아키라 백의 도전과 승부!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극찬하고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주목한, 한국인 요리사 아키라 백!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셰프로 손꼽히는 한국인 요리사 아키라 백(Akira Back, 본명 백승욱, 36세).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국 유명 인사의 파티 음식을 성공적으로 준비해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인기 요리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출연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레스토랑 잡지《하스피탈리티》가 선정한 2008년 ‘떠오르는 스타(Rising Star)’ 요리사이며 ‘요리업계의 오스카 상’인 제임스 비어드 상의 후보자로 올랐던 실력 있는 요리사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업계에서 동양인 최초?최연소로 총주방장이 된 그는 현재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 내 옐로테일 재패니즈 레스토랑 앤 라운지(Yellowtail Japanese Restaurant & Lounge)의 주방을 총지휘하고 있다. 이 책은 거침없는 도전과 모험으로 세계무대를 장악한, 그의 열정적인 삶과 성공 전략을 담은 책이다.
아키라 백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였다. 겨울 스포츠 용품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콜로라도 주 아스펜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미국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또래의 아이들은 어색한 영어 발음을 놀렸고 감당키 어려운 인종차별이 이어졌다.
그의 방황을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스노보드. ‘눈의 도시’라는 아스펜에서 스노보드는 어디서나 화제의 중심이었다. 아키라 백은 프로 스노보더가 되었고 세계 랭킹 톱 5에 들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출전 준비를 앞두고 연습 도중 심한 발목 부상을 당한 그는 한국인 최초로 스노보드 챔피언이 되겠다는 야심찬 꿈을 포기해야 했다.
또다시 방황이 시작되었을 때, 다시금 그의 방황을 잡아준 것은 요리였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는 스노보더 시절, 대회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우연히 일식당 켄이치의 구인광고를 보며 일류 셰프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켄이치에서 주방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그에게 요리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매일 새벽에 출근해 맡은 일을 끝내놓고 혼자서 200개의 스시를 쥐는 연습을 하는가 하면 일과가 끝난 후에는 식재료 이름과 맛의 특징을 모조리 외웠다. 요리를 통해 스노보더 시절의 열정을 회복하게 된 그는 보조 셰프로 일한지 6개월 만에 파트 조리장으로 승급했고, 3년 후에는 부주방이, 5년 후에는 주방장이 되었다.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 각오했던 일을 5년 만에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아시안-프렌치 대형 레스토랑 ‘마오’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다. 세계 일류 셰프를 향한 아키라 백의 도전은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레스토랑 총주방장이 주방보조를 자처, 요리 대가의 비법을 전수받기까지! 세계 최고의 셰프를 향한 아키라 백의 거침없는 도전!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 대형 레스토랑 마오의 아시안 요리 파트 헤드 셰프로 일하면서 안정된 생활이 이어졌지만, 아키라 백은 폭넓은 요리 지식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꼈다. 라이벌인 마오의 프렌치 요리 파트 주방장은 엘리트 요리사 코스를 밟고 다른 문화권을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어 특정 재료와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반면 일식에 대한 지평이 좁았던 그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마다 한계를 느꼈다. 고심을 거듭했던 그는 부모의 반대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무릎 쓰고 요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마오를 나왔다.
요리 여행에 대한 계획은 간단했다. 2년 동안, 최고의 스승에게 배우고, 가능한 많은 레스토랑에서 일 해보는 것. 그렇게 떠난 요리 여행은 그에게 많을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아이언 셰프〉로 유명해진 마사하로 모리모토를 만나 메뉴 개발과 레스토랑 운영 시스템을 배웠고 세계적인 스타 셰프, 노부 마츠히사를 통해 일식이라는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는 요리법의 다양한 변용을 배웠다. 필라델피아에서부터 뉴욕, 하와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일식당을 탐험하며 칼의 달인을 만났기도 했고 숨겨진 스페셜 롤을 발견하기도 했다.
미 전역의 주방을 돌아다닌 지 2년. 계획했던 요리 여행이 끝났을 때, 다양한 경험으로 요리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했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므 지울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요리 여행 중에 만난 노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부’와 ‘마츠히사’라는 이름으로 레스토랑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노부는 때마침 아스펜에 마스히사를 열 계획이었고 깊은 인상을 남긴 아키라 백을 떠올렸던 것이었다. 아키라 백은 노부와 마츠히사 체인점을 통틀어 유일한 비일본계인이자 가장 나이 어린 총주방장이 되었다. 기회는 모험 속에 찾아왔다.
‘아키라 스타일’로 사로잡은 라이트 그룹 총주방장 면접과 옐로테일 그랜드 오프닝! 강철 셰프의 성공을 향한 풀베팅 전략!
미국 라이트의 그룹(Light Group)의 면접 초청장은 아키라 백에게 요리사로서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이미 라스베이거스에 다수의 레스토랑을 소유한 라이트 그룹은 특급 호텔 벨라지오에 새로운 컨셉트의 일식당, 옐로테일을 열 계획을 세웠고 세계적인 명성의 셰프들에게 면접 초청장을 발송했다.
면접 당일, 면접관이 노부를 사사한 그의 이력을 보며 노부 스타일의 일식당 만들 것이냐 묻자 아키라백은 누구의 스타일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 것이라 밝히며 자신의 요리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키라의 요리는 모든 면접관을 만족시켰고 라이트 그룹의 CEO는 2차 테스트까지의 선발 규정을 바꾸어 1차 테스트로 마무리한 뒤 그 자리에서 아키라 백에게 옐로테일 합격 소식을 전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호텔 업계에서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총주방장이 되었다.
아키라 백에 대한 라이트 그룹의 베팅은 성공적이었다. 아키라 백은 옐로테일 그랜드 오프닝을 안전한 뷔페가 아닌 모험을 건 즉석주문 방식으로 바꾸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이끌어냈으며 불경기 속에서 벨라지호 호텔의 고객이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벨라지오의 높은 매출을 이끌어냈다. 자신의 꿈을 향한 풀베팅, 그것이 아키라의 성공 전략인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스노보드를 할 수 없었던 절망의 순간에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고 안정된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며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 흠모하던 스승을 만나 배우고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만들며 세계의 최고의 요리사 된 아키라 백의 거침없는 도전과 성공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또 다른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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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셰프’ 꿈과 도전과 결실…본지 최상태 기자 ‘…아키라 백’ 출간
[LA중앙일보] 발행 2010/07/02 미주판 30면
LA 중앙일보 최상태 기자가 쓴 ‘라스베이거스 요리사 아키라 백'(김영사)이 서점가에서 인기다.
아키라 백(한국명 백승욱)은 이미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유명인사.
라스베이거스의 대형호텔 벨라지오에 자리한 유명 일식식당 ‘옐로테일'(Yellowtail Japanese Restaurant and Lounge)의 총주방장으로 라스베이거스 호텔업계에서 동양인으로 최초 최연소 셰프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프로 스노보더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 부상을 입으면서 삶의 방향을 180도 바꿔 일식 식당 셰프로 전향한 드라마틱한 삶의 스토리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 미국 콜로라도 아스펜으로 이민 세계 랭킹 5위의 프로 스노 보더로 성공적 삶을 살았던 그가 발목과 어깨에 심한 부상을 당하면서 스노보더로서의 길을 포기한 후 좌절의 시간을 거쳐 어떻게 일식계의 유명 셰프가 되었는지에 대한 삶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특히 이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좌절한 후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 실패를 원동력으로 삶의 방향을 정반대 방향으로 급회전한 아키라 백의 용기와 의지가 담겨 있어서다.
또한 그가 쓰러질 때마다 놀라운 결정을 할 때마다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밀어준 아버지와 가족들에 대한 헌신과 후원 사랑의 따스한 내용이 이 책이 독자들을 끄는 요인.
LA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으로 활동중인 최상태기자는 ‘과테말라 커피농장의 아이들’ ‘미국 이지스함을 가다:챠피(Chaffee)함 동승 취재’등으로 우수기자상을 받은 바 있다. 책은 북마트에서 판매중이다.
짐 리, 셰리 저니프, 백충현, 사브리나 케이, 유재건, 에밀 맥, 최충선, 로버트 김, 지순자, 김형복, 강충원, 이창래, 장미나, 데이비드 김, 셸리 윤, 토머스 한, 김승철, 카니 강, 윌라 김, 그레고리 배,이병응, 수전 김, 블레어 킹, 안수명, 구경순, 신화봉, 리처드 홍, 피터 정, 미사 최, 김영희, 신혜선, 정재훈, 브루스 풀턴-윤주찬 부부, 오해권, 데이비드 오, 신효철, 강우원, 서준호, 안 트리오, 폴 김, 김윤진, 맹성렬, 패티 신, 제임스 오, 박경만, 한학순-스와이엣코프스키, 마거릿 조, 스티브 김, 이미혜, 유복형
저자 이영아
이화여대 신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뉴욕대학 대학원 공연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1968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였고 현재 중앙일보 미주본사 편집위원이다. 번역서로는 재일 교포 채수명의 영역본 ‘생명과 희망’, 테네시 윌리엄스가 마리아 세인트 저스트에게 보낸 서간집 ‘다섯 시의 천사’, 퓰리처상 수상 작가 랜퍼드윌슨의 수상 희곡집 ‘텔리가의 빈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