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성 저 | 북스토리 | 2005년 12월 13일
출간일 | 2005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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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67쪽 | 856g | |
ISBN13 | 9788989675525 |
ISBN10 | 8989675529 |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 김영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김영옥은 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한 전설적인 작전장교로 한국정쟁 때는 한반도 휴전선 60km 북상의 주역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그는 영웅이었지만 국경을 초월한 인도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지켜왔으며, 여성·아동·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이기도 했다.
목차
서문/취재기
제1부 한국의 아들
로마해방 /독립운동가의 가족
제2부 김영옥 신화로 물드는 유럽
전설을 기다리는 장교 /전설은 시작되고 /악몽의 전투-몬테 카시노 /전설에서 신화로
제3부 승리를 향한 마지막 진통
브뤼에르 탱크작전 /비운의 비퐁뗀느 /영웅의 귀환
제4부 아버지의 나라로
다시입는 군복 /아버지의 나라로 /베니대 그룹 /소양강 철수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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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우성
현직은 New America Media 한국부장.
AP통신 기자상, 미국 소수계 기자상,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후보가 됐으며, Stanford 대학의 Knight Fellow로 선발됐고, 세계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PBS-TV의 언론인 다큐멘터리 시리즈‘Democracy on Deadline’의 제작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는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 7년 전 미국에서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하는 대일소송을 이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책의 출간도 몇 년 늦어졌다.
이 같은 경력의 기자가 5~6년에 걸쳐 발로 뛰며, 한국·프랑스·이탈리아·미국 등 철저한 현장 취재, 참전용사 등 수백 명의 인터뷰, 2만장이 넘는 미군 전투상보, 기타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집필한 역작이 『영웅 김영옥』이다. 그는 non-fiction으로 이 책을 마무리하겠다는 초심을 관철하기 위해 2년간 아예 직장까지 떠나, 풀타임으로 매달려 결국 집필을 마무리 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이 이번 출판에 대한 그의 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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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누가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가?
현재 미국에서 80세의 노인으로 암투병을 하고 있는 김영옥은 미국과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등지에서 전설적인 전쟁영웅으로 불리며, 미국 내 차별받는 자들 사이에선 그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영웅적인 지도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2003년 그의 한국에 대한 사회봉사활동을 높이 사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으며, 2005년에는 한국전에서 그의 활약을 인정해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한국이민박물관은 그의 기념관을 영구설치 운영하기로 결정했으며, MBC스페셜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영웅 김영옥’이란 다큐로 다루었다.
2.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부르게 하는가?
전쟁영웅으로서의 김영옥
그는 2차대전 당시 아무도 잡지 못했던 독일군 포로를 대낮에 잠입하여 생포함으로써, 로마해방을 앞당기는 주역이 되면서 ‘전쟁영웅’의 길을 연다.
그는 작전참모로 유엔군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피사로 입성할 수 있게 전략을 구사하는가 하면, 탱크가 내려갈 수 없는 산비탈에 탱크를 내리는 전략으로 독일군 탱크부대를 전멸시키기도 한다. 또한 기존 유럽식 전쟁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전략으로 연이은 승전을 거듭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군사교본을 다시 쓰게 만든 장본인이 된다.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자원한 김영옥은 패전을 거듭하던 1대대의 대대장이 되어 모든 소대에게 승리를 맞보게 하면서 사기를 진작시키고, 나아가 38선을 60km나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차별받는 자의 영웅으로서의 김영옥
그의 사회적 헌신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수백 명의 전쟁고아들을 돌볼 때부터 시작된다. 전후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평생을 사회봉사활동에 바치게 되는데, 이는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유색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지키고 신장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미국 내의 한인건강 정보센터, 한인 청소년회관,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소 등 많은 기관이 그의 노고의 결과로 운영되고 있다.
전쟁과 소수자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재미일본교포들에게도 우상이 되었지만, 일본의 기업위안부 문제에서 만큼은 일본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국제 소송을 지원하는 데도 물러섬이 없는 애국자이기도 하다.
프랑스.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 , 미국 은성무공훈장 수훈
한국 태극무공훈장, 사회봉사로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한국이민박물관 영구전시관 설치 결정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재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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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전쟁영웅 김영옥 대령 일대기 출간
LA중앙일보] 발행 2005/12/09 미주판 5면
2차대전.한국전 승전에 큰 몫, 미주 한인 권익신장에도 기여
한국계 전쟁영웅 김영옥(86)의 활약상을 담은 책 ‘영웅 김영옥'(한우성 지음.북스토리)이 한국에서 발간됐다.
현재 미국에서 암투병 중인 김영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유색인 미국 장교로 활약한 전설적인 전쟁영웅이다.
그는 2차 대전에서 독일군 포로를 대낮에 잠입해 생포하면서 로마 해방을 앞당기는 주역이 됐다.
작전참모로서 유엔군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피사로 입성할 수 있게 전략을 구사하는가 하면 산비탈에 탱크를 내리는 전략으로 독일군 탱크부대를 전멸시키는 등 기존 전쟁방식을 뒤흔든 전략으로 승전을 거듭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해 38선을 60㎞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서 뿐 아니라 차별받는 이들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가로서도 존경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수백명의 전쟁 고아들을 돌봤던 그는 전후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유색인 등 약자의 권익을 신장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미국 내의 한인건강 정보센터 한인 청소년회관 가정폭력 피해여성 보호소 등 많은 기관이 그의 노고의 결과로 운영되고 있다.
1945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최고무공훈장을 195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십자무공훈장을 받았던 그는 2003년 한국에 대한 사회봉사활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올해에는 한국전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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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 별세
[LA중앙일보] 발행 2006/01/01 미주판 1면

최근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위독했던〈본지 12월 24일자 A-1면>2차대전 및 한국전쟁 영웅 김영옥(사진) 예비역 육군 대령이 지난 29일 오후 9시쯤 결국 숨을 거뒀다. 86세.
이날 별세한 고 김 대령의 유해는 LA시내 시더스 사이나이 메디컬센터 영안실에 안치됐으며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재단 측은 신년연휴 직후 장례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조카 일가족이 있다.
한편 LA총영사관(총영사 이윤복)은 한국 정부가 지난 10월 고 김 대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한 태극무공훈장을 오는 4일 도착하는 새해 첫 외교행낭편으로 입수해 영결식장에서 추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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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옥 대령은 누구] 한인 빛낸 ‘전쟁 영웅’
[LA중앙일보] 발행 2006/01/01 미주판 2면
2차대전 연전연승 로마 해방의 주역

2차대전에 정보장교로 참전했을 당시의 김영옥 대위가 상관으로 부터 훈장을 받고있다.
29일 별세한 고 김영옥 대령은 미국에서는 물론 유럽 각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미주 한인사회의 자랑스런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미국서 태어난 한인 2세로서 2차세계 대전이 터지자 ‘니세이'(일본계 2세) 병사들을 이끌고 유럽전선에서 맹위를 떨쳤다.
전원 일본계 병사들로만 구성됐던 미 육군 442연대 100대대는 ‘끝장을 낸다(Go For Broke)’를 구호로 내걸고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전선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는 100대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상륙작전에 참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로마 해방의 주역이 됐다. 곧이어 그는 피사를 해방시킨 뒤 연합군 최초로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올라간 군인이었다.
이후 김 대령은 독일 치하에 있던 프랑스 동북부 보슈산맥 인근의 브뤼에르. 비퐁텐느 지역을 해방시키며 오늘날 미국의 군사 교본을 다시 쓰게 만드는 장본인이 됐다.
지난해 2월 4일 LA다운타운의 리틀도쿄에서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김 대령에게 전달한 필리페 라흐유 LA주재 프랑스 총영사는 “프랑스는 당신의 희생과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단상 옆에 앉은 김대령 앞에 몸을 낮췄다.
고 김영옥 대령의 진가는 전역 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자원입대해 미 육군 제7사단 31연대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세운 무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한-미 연합군이 38선 이남에 형성돼 있던 전선을 60km나 북상시키는 과정은 그가 이룬 불패신화에 힘입은 바 크고 이 사실은 한국 국방부도 인정하는 공식 전사다.
그는 2차대전에서 세운 전공으로 레종 도뉘르 훈장을 비롯 미국 특별무공훈장과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을 받았으며 한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남가주 일본계 커뮤니티는 그를 기려 ‘잊혀진 용맹(Forgotten Valor)’ 이라는 기록영화를 만들어 냈고 언론인 한우성씨는 최근 ‘영웅 김영옥'(북스토리)이라는 전기를 한국에서 발간했다.
오종수 기자